골목은, 참을성이 많다 > 좋은글/감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좋은글/감동

골목은, 참을성이 많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걍뭐 작성일16-09-02 09:21 조회1,573회 댓글0건

본문

무뚝뚝한 철문이 바깥을 힘겹게 밀었다
녹슨 늑골 사이, 손 하나가 슬며시 빠져나오고
폐활량을 늘린 골목이 서둘러 손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보이지 않는 등을 배웅하는 늙은 목소리가 저 안쪽에서 구겨졌다
뻐꾸기 벽시계가 감정이 삭제된 울음을 일곱 번 반복하고 돌아갔다
고개 뺀 키다리 꽃이 바깥을 중계했다
한 도막의 기억이 새순을 밀어 올리는지
문밖이 궁금한 틀니가 흘린 말들을 집느라 골목이 몸을 튼다
지문 닳은 페이지를 넘기면 어슴푸레 내력이 읽히는 골목은
언제부터 골목이었을까
낱장이 부욱 뜯겨도 함께 늙어가는 집들이 다시 기록을 채운다


문 열고 나온 입들이 소문을 부풀려도
퉤 퉤 몰상식을 뱉거나 덜 꺼진 고민을 발로 짓이겨도 묵묵히 귀만 세우는 골목


골목은, 참을성이 많다


- 시, '골목' -

 

 

남녀가 부둥켜안은 장면을 흘긋거리던 사춘기가 있습니다.
그때, 가로등 꺼진 골목은 그들의 부끄러운 사랑을 확인하던 장소였지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골목은, 함부로 걸어도, 소중한 누군가의 손을 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낯을 가려주는 곳, 대로변으로 나갈 수 없는 마음을 가려주는 곳임을.
누구에게나 골목 같은 비밀은 있습니다.
그렇기에 훤히 읽히지는 않지만, 공감하기도 하지요.

 


- 최연수 시인

 

<사색의 향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좋은글/감동 목록

Total 351건 22 페이지
좋은글/감동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6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기글 안경 09-21 1757
35 나 당신을 위해 여기 있습니다. 인기글 작은여시 09-21 1761
34 풍성한 한가위 인기글 걍뭐 09-14 1617
33 여유로운 마음 인기글 안경 09-14 1670
32 왜 그럴까, 우리는 인기글 작은여시 09-14 1613
31 참 모습 인기글 걍뭐 09-10 1556
30 그대가 내 곁에 있으면 인기글 안경 09-10 1557
29 계절이 지날때마다 인기글 작은여시 09-10 1578
28 잠자는 숲 인기글 걍뭐 09-07 1622
27 머리는 차가운 것을 좋아합니다 인기글 안경 09-07 1649
26 참 소중한 사람 인기글 작은여시 09-07 1622
25 너와 나의 기적 인기글 걍뭐 09-03 1731
24 살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 인기글 안경 09-03 1610
23 과일과 사람 인기글 작은여시 09-03 1590
열람중 골목은, 참을성이 많다 인기글 걍뭐 09-02 1574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www.EunjinSky.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EL. 010-8616-4790 FAX. 031-278-5407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526-7
대표:김동배 사업자등록번호:624-33-00084 개인정보관리책임자:김동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